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맨해튼 계획 (문단 편집) == 기타 == * 우라늄을 분리하는 원심분리기 건설에 전선용으로 대량의 [[구리]]가 필요했는데, 전시 상황이라 구리 수급이 쉽지 않았다. 현대에는 이런 방식을 쓰지 않으나 당시 기술력상 추출 방식이 복잡했기 때문에 생긴 일. 미 정부는 '''구리를 구할 수 없자, 대범하게도 Y-12 프로젝트[* [[https://en.m.wikipedia.org/wiki/Y-12_National_Security_Complex|영문위키의 Y-12 프로젝트]]. ]를 출범시켜 [[재무부(미국)|미 연방 재무부]] 창고에 보관[* 당시 미국에서 발행되던 지폐 중에 '''은 증서(silver certificate)'''라는 것이 있었다. [[금본위제]]가 공식적으로 시행되기 전, 은도 금 못지않은 기초자산이어서, 재무부에 보관된 은을 담보로 지폐를 발행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재무부 금고에 쌓여 있던 은은 어마어마했을 터. 이후 이 은은 40년 넘게 전략물자로 계속 보관해 오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들어서 은 기념주화 제작·판매가 99대 미국 의회에 의해 허용(Public Law 99-61)됨에 따라 기념주화의 재료로 소진되었다. 이 법에 따른 기념주화는 1986년에 처음 생산되어 '''지금까지도''' 매년 생산 중이나,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보관되어 있던 은은 이미 다 썼다.] 중이던 1만 3천 톤의 [[은]]을 가공하여 대신 사용'''했다.[* 전기 전도도는 구리보다 은이 좋다. 구리가 더 저렴하고 평시에는 대량으로 구할 수 있기에 전선 등 전기를 이용하는 것에 구리가 더 많이 쓰인다. 문제는 그만큼 구리가 여기저기 안 쓰이는 데가 없다보니 전시에는 구리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놋그릇]]도 징발해다가 녹여 쓸 정도였다. 반도체 배선에는 전기 전도도가 은의 약 70% 수준이지만 연성과 전성이 매우 뛰어난 [[금]]을 쓰며, 송전선에는 송전탑간 거리를 감안한 장력도 중요하기 때문에 훨씬 가벼운 [[알루미늄]] 소재를 쓴다.] 물론 개발이 끝나고 나서는 시설을 꼼꼼하게 다 뜯어내고 은을 모두 찾아내어 회수했는데 고작 0.036% 미만의 [[큰 수의 법칙|손실밖에(?!)]]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Y-12 프로젝트에 맨해튼 계획 예산[* US$ 2 billion in 1939(equivalent to about $23 billion in 2020).]의 절반이 들어갔다. 이 은을 조달할 당시 재무부와 프로젝트 팀 사이에서 있었던 대화가 유명하다. >재무부: 은이 얼마 정도 필요합니까? >맨해튼 프로젝트 팀: 대충 1만 톤 정도요?[* 1만 톤이면 탈[[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조약]]형 [[경순양함]] 한 척 정도의 질량이다.] >재무부: .....우리는 은을 [[온스#s-2.2|트로이 온스]][* 31.1그램이다.]로 셉니다. * 미국은 맨해튼 계획 완수 이후 '앞으로 장기간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다'라는 전제 위에 모든 전후 처리를 결정하였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소련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어차피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국의 핵무기 때문에 소련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대인배의 풍모를 보인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런데 4년 만에 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전제가 깨지게 되었다. 소련도 핵무기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기에 2차대전 동안 이론 연구는 계속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핵분열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문과 기사가 사라진 것을 이상하게 여긴 소련 과학자가 미국이 핵분열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도 했다. 결국 맨해튼 계획에 [[간첩]]을 투입하여 미국의 연구개발 자료를 빼돌렸다. 자신들의 이론 연구와 엄청난 돈과 인력을 퍼부어서 실험한 미국 쪽 자료를 바탕으로 단시간 안에 핵무기를 만들었다. [[소련의 핵개발|1949년 8월, 첫 원폭실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쪽도 미국의 맨해튼 계획과 비슷하게 거의 60만 정도의 인력들을 쏟아부어서 성공시킨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미국 과학자들은 대부분 소련 따위가 어떻게 핵무기를 만드냐고 생각했지만 뒷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특히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퇴임 이후에도 "난 소련이 핵무기를 가지지 않았다고 믿는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2차대전 말 미국은 낙후한 과학기술과 폐허가 된 국토의 재건 때문에 소련의 핵무기 개발은 최소 20년 이상 걸린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은 이후에도 소련의 과학기술 개발을 깔보았고 이로 인해 나중에 [[스푸트니크|뒤통수를 한 번 더 맞게 된다]].[* 의외로 소련의 기초과학 수준은 매우 높았는데, 소련이 붕괴한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러시아가 그 수혜를 보고 있을 정도이다.] *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미국 흑인]] 과학자가 없다고 알려져 있으나 근거없는 [[루머]]이다. 처음에 어디서 전파되었는 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맨해튼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Chicago pile 1의 기념 사진 중 흑인이 없다는 이유로 퍼진 것으로 보인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1941년부터 1946년까지 약 130,000여명의 과학자가 동원되었고 수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시카고 파일1 저 사진 한 장 만으로는 일반화할 수 없다. 애초에 [[미국]]이란 나라의 구성원은 흑인을 포함해 여러 인종이 섞여 있다보니 당연히 다른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흑인, 다른 인종 과학자들도 참여했다. 다른 인종 특히 백인에 비해서 흑인 과학자의 수가 적다는 논리로 공격하는 사람들은 당시 시대상을 모를 확률이 높다. 1940년대는 흑인이 린치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인종차별을 미연방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여건상 비교적 적을 수 밖에 없다.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편견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게다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행정명령 8002호도 존재한다. 즉, 인종 차별 같은 것으로 국가 안보에 반드시 필요한 연구에 해악을 끼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It is the policy of the United States to encourage full participation in the national defense program by all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regardless of race, creed, color, or national origin, in the firm belief that the democratic way of life within the Nation can be defended successfully only with the help and support of all groups within its borders." >"인종, 신념, 피부색, 국적에 관계없이 미국 국민 모두가 국방 프로그램에 완전히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으로, 국경 내 모든 집단의 도움과 지원이 있어야만 국가의 민주적인 삶의 방식이 성공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다." 흑인 과학자 중에 가장 유명한 과학자는 윌리엄 제이콥 녹스 주니어(William Jacob Knox Jr.)이다. 녹스는 흑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all-white Corrosion Section에서 전례없는 직책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녹스팀은 [[우라늄]] [[동위원소]]를 분리하는 연구에 참여했으며, 우라늄 헥사플루오라이드를 활용한 복잡한 과정을 통해 1945년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사용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원자폭탄]]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업적은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며 사망할 때까지 계속 인종차별을 당해야만 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컬럼비아 대학교]], [[MIT]], 맨해튼 프로젝트 국립 역사 공원에서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 웃기게도 보안상의 이유로 아무 잘못없는 청소부들이 한번 들어갔다 전쟁이 끝난 6개월 뒤에 풀어줬다. * 맨해튼 계획의 자료를 빼돌린 간첩으로는 [[클라우스 푹스]]가 유명하다. 독일 태생의 영국 국적 물리학자이고, 1932년에 공산당에 입당했었다. 영국 내에서 핵 연구를 주도하던 사람 중 하나였으며, 그래서 영국의 자료가 미국으로 넘겨졌을 때 영국측 과학자로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선임 과학자였던 만큼 소련이 원하던 핵 개발 핵심 자료 대부분(또는 전부)에 접근할 수 있었다. 푹스는 플루토늄 폭탄에는 포신형 타입이 아니라 내파형이어야 한다는 설계를 넘기는 등 소련이 미국에 비해 시행착오를 덜 겪고 미국보다 적은 자원으로 빠르게 핵 개발을 성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수소폭탄을 52년에 성공시켰는데 소련은 53년에 바로 따라잡았다. 푹스 외에 해리 골드, 데이비드 그린글라스, 테오도르 할, [[로젠버그 부부 간첩 사건|줄리우스 로젠버그와 에텔 로젠버그 부부]], 모리스 코헨, 조지 코발, 멜리타 노우드 등등이 주요 간첩으로 꼽힌다. (그 외의 알려진 인물은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Atomic_spies|Atomic spies]] 항목을 참고하라.) 이러한 간첩 적발은 베노나 프로젝트로 소련 정보망의 암호를 해독하면서 클라우스 푹스가 첩자였다는 걸 적발하면서 관련자를 줄줄이 엮어 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중에 소련 측에서 흘러나온 정보로 뒤늦게 알아낸 인물이나, 법정 밖에서 공개할 수 없는 자료라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 그리고 정황상 관련자가 더 있을텐데 적발된 자들이 입을 다물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첩자가 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